작지만 날카로운 한국인 디제이 셋 모음

외국 디제이를 주로 다루다 보니, 외국 디제이만 찬양하나 싶을 수 있겠다. 그렇지 않다. 나는 로컬 디제이 씬이 성숙해지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천하고픈 한국 디제이 셋을 모았다. 대부분 방이나 작업실에서 튼 셋이고, 조회수가 아직 몇백인 것도 있다. 그래도 하나같이 수없이 들었던 셋들로, 애정을 담아 소개한다.
ANA KIM
도입부에 특이한 사운드를 넣는 것. 잘못 쓰면 굉장히 별로인, 도박과도 같은 선택이다. 안나 킴의 이 셋은 도입부 사운드(이게 가야금? 북? 기타? 여러 개가 섞여 있어서 뭔지 정확히 모르겠다)가 무려 4분이나 이어진다. 그런데 그 뒤의 미친 듯한 BPM과 끝없이 질주하는 전개를 듣고 나면, 이 4분이 여정에 빠져들게 하기 위한 최고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셋은 모든 게 완벽하지만, 딱 하나 단점이라고 하면 1시간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디제잉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이 역시 아쉬운 사실.
kanekhw
한때 딥하우스를 정말 많이 듣던 시절, 알고리즘으로 마주한 셋. 제목도 담백하니 딱 deep house여서 끌렸다. 흐름이 깔끔하고, 다크하지 않으면서도 리드미컬한 요소를 섞어 루즈해지지 않게 에너지를 돋운다. 이 채널엔 다른 영상도 많은데, 모두 듣기 좋다. 그 무렵 유튜브엔 믹스셋이 유행처럼 마구 올라왔던 것 같은데, 자극적인 카피나 썸네일 없이 오로지 셀렉만으로 설득해 더욱 기억에 남는 셋이다. 참고로 나도 이 셋에서 몇몇 곡을 건졌다.
JISOO
DCG 채널은 지금도 꾸준히 방문하는, 애정하는 채널이다. 여느 때처럼 틀어놓고 듣던 중, 전개가 너무 좋아 찾아보니 한국인 디제이여서 더 놀랍고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지난 몇 년간 정말 반복해서 들은 셋이다. 하우스를 사랑한다면, 정말 좋은 하우스 셋을 듣고 싶다면 꼭 들어보길 바란다. 한 시간 내내 흔들림 없이 아름답다. 참고로 이 채널에 나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 노숙인을 돕는 모금 방송이었다. 그녀는 한국 시간 새벽 1시부터 라이브로 바이닐 플레이를 한 것.
E3
E3의 디제잉은 본능적이고, 동물적이다. 그리고 과감하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건 아마 permit에서였을 것이다. 여러 스테이지 중 한 곳의 사운드가 특히 귀에 꽂혀서 가 봤더니 그곳에 있던 게 E3였다. 그녀의 사운드는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는데, 특유의 액팅까지 함께 마주하다 보면 굉장히 동물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녀의 무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터. 개인적으로 서울하우스뮤직 채널에 이 셋을 담을 수 있어 기쁘기도 했다. 지금보다 더 주목받아야 할 아티스트임이 분명하다.
AIRBEAR
평소에는 이런 차분한 셋을 즐겨 듣는다. 당신도 나와 같다면 Airbear의 이 셋을 분명 사랑할 것. 이미 오랫동안 활동해 온 그는 그만의 감각으로 아주 천천히 템포를 끌어올리는데, 이 마법 같은 터치를 꼭 즐겨보길 바란다. 2023년 겨울, 친구 집 거실 같은 스튜디오 남산과 잘 어울리는 아주 따뜻한 셋이다. 중간에 저작권 때문에 날아간 부분이 있어, 너무 아쉬울 따름.
Ju nan
바이닐과 유로랙 사운드의 따뜻한 질감으로 채워진 셋. 이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으나, Ju nan은 중간중간 변주를 넣어, 셋을 듣는 즐거움을 더한다. 뭐랄까, ‘발칙하다’ 같은 표현을 적어보겠다. 뚝뚝 끊기는 저화질 영상과 따뜻함이 가득한 이 셋은 올해 들어 가장 인상 깊었다. 그가 풀어낸 봄이 여기에 정확히 담겨 있다.
Text by고르바초프 가스파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