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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터시만 5년째 찍는 사람들, Adam Fierman 인터뷰

엑스터시 알약에는 로고가 찍혀 있다. 테슬라, 미쓰비시, 롤렉스, 슈퍼맨. 그중 상당수는 허락 없이 가져온 디자인이다.

암스테르담에 사는 Adam Fierman은 이 알약들을 벌써 5년째 기록하고 있다. 미국 출신으로 광고 일을 하던 그는 함께 일을 했던 브랜드의 로고가 알약에 찍혀 돌아다니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사진가 Peter Andrew Lusztyk와 함께 수집가들의 컬렉션을 초접사로 찍었고, 제조자와 딜러, 화학자, Harm Reduction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 그렇게 찍은 알약 654종이 616쪽짜리 책 《Faces of Ecstasy》로 10월 22일 나온다.

누가, 왜 알약에 로고를 찍는지. 출간을 앞둔 그에게 물었다.

한국에는 이 세계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Faces of Ecstasy》가 어떤 책인지, 어떤 걸 만들고 싶으셨는지부터 들려주세요.

전 세계에서 수백만, 아니 수천만 명이 엑스터시를 경험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손꼽히게 흔한 불법 향정신성 물질이고 성인 열 명 중 한 명쯤은 해봤다는 추정이 있어요. 그런데 정작 알약 자체를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약물과 달리 엑스터시 알약에는 브랜드가 붙어요. 밝은 색으로 찍어내고 로고와 디자인을 새깁니다. 그중 상당수는 유명 자동차 회사나 소셜미디어 플랫폼, 뮤지션을 비롯해 대중문화 곳곳에서 디자인을 훔쳐옵니다.

5년 전, 파트너인 Peter Andrew Lusztyk와 저는 이 감춰진 세계에서 디자인과 마케팅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제대로 알아보자고 나섰습니다. 《Faces of Ecstasy》는 초접사 촬영과 알약을 만드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그 세계를 직접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갤러리 전시와 박물관 협업, 세계 곳곳의 행사로 이 세계를 알리고 Harm Reduction에 보탬이 되고, 수백만 명이 경험했지만 제대로 살펴본 사람은 거의 없는 이 분야를 더 깊이 연구하게 하려는 거예요.

검은 벽에 격자로 걸린 알약 사진 액자와 그 아래 작은 화면들, 화면을 가리키는 관람객
암스테르담 전자음악 박물관 Our House의 상설 전시 벽

광고 대행사를 하실 때, 맡고 있던 브랜드의 로고가 알약에 찍혀 나오는 걸 보셨다고요. 주변에서는 다들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요. 그때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마케팅이랑 광고 쪽 사람이에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무렵, 저는 로고가 수시로 도용돼 알약에 찍히던 바로 그 브랜드 몇 곳과 일하고 있었어요. 그게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이 기업들은 지식재산을 만들고 지키는 데 수백만 달러를 쓰는데, 이 지하 세계에서는 그 로고가 한순간에 가져다 쓰이고 기업은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요. 미쓰비시만 해도 자기 로고가 알약에 찍히는 걸 수십 년째 막으려고 해왔습니다. 그런데 못 막아요. 그냥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미국 출신인데 암스테르담에 삽니다. 세계 엑스터시 알약의 대부분, 많게는 90%가 여기서 만들어진다는 걸 알고 나서 네덜란드 친구와 동료들에게 이 알약과 로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 시작했어요. 친구들한테는 아주 평범한 일이었어요. 그걸 보며 자랐고 한 번도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한쪽이 당연하게 여기는 걸 다른 쪽이 아주 이상하게 볼 때, 그 틈에는 대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처음엔 파고들 이야기가 그렇게 많겠냐며 회의적인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 수십 장, 수백 장을 갤러리 벽에 나란히 걸어놓으면 바로 분명해져요. 이건 지하에서 자란 팝 아트예요. 들여다볼 가치가 있어요.

양쪽 벽에 알약 사진이 빼곡히 붙은 컨테이너 안, 안쪽 끝의 보랏빛 조명
Superflirt 페스티벌 메인 무대 옆에 세운 설치

만드는 사람들도 이걸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야기를 나눠보면 포지셔닝이나 출시, 경쟁자 같은 비즈니스 워딩을 실제로 쓰는지, 아니면 그냥 끌리는 대로 만드는 건지 궁금합니다.

하나로 답할 수가 없습니다. 이 알약을 만드는 사람들이 다 같지 않거든요. 작은 작업장에서 하루 몇천 정을 찍으면서 마케팅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대개 중국 제조사에서 기성 스탬프를 사다가 멋져 보이는 걸 고르는 식이죠.

반대쪽 끝에는 훨씬 정교한 제조자들이 있어요. 개중에는 마케팅을 전공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맞춤 디자인 스탬프를 주문하고 요즘의 문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여겨보면서 거기에 얹힐 방법을 찾습니다.

대형 제조자들, 그중에는 하루 100만 정까지 찍는 곳도 있는데, 이들은 분명히 출시, 경쟁사, 시장 판도를 따지면서 생각합니다. 다가올 행사에 맞춰 낼 디자인을 미리 줄줄이 짜 두고 알약 생김새도 만드는 방식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밀어붙이면서 경쟁자보다 앞서려고 계속 애씁니다. 그러니까 순전히 감으로 하는 곳부터 놀랄 만큼 브랜드 전략다운 곳까지 다 있는 셈이에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기도 하나요?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암호화된 메시지로만 주고받나요?

둘 다입니다. 제가 직접 만난 사람들도 있고요. 그리고, 음, 어떤 사람들은 저를 먼저 만났다고 해두죠.

저희가 인터뷰한 사람 중에 네덜란드 최대 규모에 드는 제조자가 있습니다. 암호화된 채널로 처음 연락이 닿았을 때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이미 제 전시에 몰래 와서 저와 이야기를 나눠봤고 제가 경찰인지 아닌지 떠봤다고 털어놓더군요. 그러니까 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이미 만난 사이였던 거예요. 저에게는 행사에 온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을 뿐이었고요. 그렇게 확인하고 나서야 온라인으로 연락해 와서 암호화된 플랫폼에서 대화를 이어 가도 되겠다고 마음먹은 거죠.

사람마다 정말 다릅니다. 형을 살고 나온 전직 제조자들은 얼굴을 맞대는 걸 비교적 편하게 여겨요. 현역 제조자 중에도 직접 만난 사람이 있고요. 다만 규모가 가장 큰 조직은 보안을 아주 중요하게 여겨서, 그쪽과는 거의 암호화 채널이나 다크웹 포럼, 보안 전용 앱으로만 이야기해요.

어두운 전시장에서 천장에 매단 알약 사진 조명판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암스테르담 클럽 Shelter에서 연 전시 〈Prohibited Allowance〉

영화 개봉이나 선거에 맞춰서, 제품처럼 날을 잡고 풀린 약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뭐였는지 알 수 있을까요?

2013년 6월 20일입니다. 네덜란드에서 레드 슈퍼맨 알약이 풀린 날이에요. 날짜를 정확히 아는 건 제조자가 딜러들에게 그전에는 절대 팔지 말라고 엄하게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6월 20일은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 네덜란드 개봉일이었어요. 제조자는 약이 영화와 같은 날 나오길 바랐던 거죠.

그 정도로 치밀하게 맞추는 경우가 아주 흔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Tomorrowland나 Awakenings 같은 큰 페스티벌에 맞춰 약이 나오는 일은 자주 있어요. 물론 페스티벌 주최 측은 이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제조자들이 자기 제품을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때에 갖다 붙이는 것뿐이죠.

암스테르담 댄스 이벤트가 매년 10월 여기서 열리는데, 예년에는 여기에 맞춰 디자인된 알약이 나오는 걸 봤습니다. 올해 새 ADE 알약이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어요. 10월까지 기다려보셔야 알겠네요.

대부분의 약은 특정 날짜나 행사에 그렇게까지 정확히 묶여 있지는 않습니다. 보통은 요즘 분위기에 맞고 사람들한테 와닿을 만한 걸 만들려는 정도예요. 다만 가끔은 진짜 신제품 출시처럼 날짜와 연출까지 맞춰 내놓기도 합니다.

슈퍼맨 S 방패 모양의 빨간 알약
ADE 로고를 새긴 연두색 네모 알약

레드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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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뒤 벽에 붙은 알약 그림 포스터. 「THE ART OF XTC」 「Tweede Rozendwarsstraat 24」 「22-26 Oct | 12:00-22:00」
2025년 ADE 기간, 암스테르담 거리에 붙은 전시 포스터

디자인이 음악을 따라가기도 하나요? 하드스타일 관객을 겨냥한 알약과 테크노 파티용 알약이 모양이나 색이 다른지, 아니면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네, 오랫동안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조자들이 관객층마다, 장르마다 디자인을 따로 만들어 온 거죠. 하드스타일 쪽은 해골이나 더 거친 모양처럼 ‘더 하드한’ 모티프가 많은 편입니다.

스탬프는 싸고 빠르게 복제돼서 잘 만든 디자인도 오래 독점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그럼 만드는 쪽은 디자인을 어떻게 하나요?

복제는 알약 제조의 가장 초창기부터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스탬프는 제조자가 자기 제품을 알아보게 하고 이건 내 거라고 표시하고 입소문을 내는 수단이었어요. “지난주에 화이트 도브 먹었는데 괜찮더라”, “그린 스타는 피해라” 같은 식으로요. 그 디자인들이 평판을, 그러니까 브랜드 가치를 얻자마자 다른 제조자들이 바로 베끼기 시작했습니다.

달라진 건 그게 얼마나 빠르고 쉬워졌느냐예요. 지금은 중국 제조사에서 기성 스탬프 수천 종을 싸게 구할 수 있어서, 그런 스탬프를 쓴 디자인은 시장에서 아주 빠르게 돌고 사실상 아무런 보호도 못 받습니다. 맞춤 스탬프는 독점이 더 오래, 때로는 몇 달까지 가지만 이것도 비교적 싸고 빠르게 복제될 수 있어요.

그래서 좀 더 정교한 제조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남들이 못 따라오게 막으려고 합니다. 하나는 디자인을 복잡하게 하는 거예요. 스탬프가 정밀하고 복잡할수록 그걸 깨끗하게 똑같이 찍어 내려면 더 전문적인 장비가 필요하니까요. 다른 하나는 만드는 과정을 까다롭게 하는 거고요. 예를 들어 네덜란드의 한 대형 제조자는 색이 뚜렷하게 세 겹으로 나뉜 알약을 만듭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전용 장비가 필요한 공정이에요. 디자인은 여전히 베낄 수 있어도 품질은 훨씬 흉내내기 어렵습니다.

제조자들이 예전보다 훨씬 자주 디자인을 바꾸는 것도 보여요. 베끼는 쪽보다 한발 앞서려는 이유도 있고요. 2012년 무렵부터는 비트코인, 이후에는 모네로 같은 암호화폐 덕분에 은행 거래 같은 기록을 덜 남기면서 스탬프와 장비를 사기가 쉬워졌습니다. 이런 변화들이 합쳐져 디자인은 훨씬 많아졌고 점점 지하에서 벌이는 브랜딩 군비 경쟁처럼 돼 가고 있어요.

둥근 선글라스와 수염을 새긴 무천도사 얼굴 모양의 보라색 알약
「DRAGON BALL Z」 글자와 가로 금을 새긴 검은 뒷면
보라·흰색·검정 세 층이 드러난 옆면

무천도사 알약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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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오셨죠. 왜 그 선을 그으셨나요? 지키기 힘들었던 적은 없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알약 디자인의 가장 위험한 점 하나는 입소문으로 추천이 돌게 만든다는 거예요. 누군가 “블루 인크레더블 헐크 먹었는데 괜찮았어”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런데 복제가 워낙 널리 퍼져 있어서, 비슷하거나 심지어 똑같아 보이는 다른 알약에 전혀 다른 물질이나 용량이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아카이브에 있는 알약의 검사 결과를 공개하면 사람들이 섣불리 믿어 버릴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 똑같은 알약이 팔리는 걸 보고 같은 게 들었다고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특별히 강하거나 평이 좋은 약 때문에 특정 로고가 보증서처럼 되거나, 제조자들이 그 디자인을 베끼도록 부추기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이 선을 지키는 게 특별히 어려웠던 적은 없습니다. 저희 역할은 시각 문화를 기록하는 것이지 제품을 인증하는 게 아니니까요. 네덜란드에서는 싸거나 무료인 전문 검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위험한 약이 나오면 공개 경보가 발령되기도 합니다. 대개 저희가 그 알약을 촬영하기도 전에요. 유럽 다른 곳에도 비슷한 체계가 있습니다.

책에는 MDMA가 아닌 물질이 든 알약도 일부 실립니다. 다만 검사 결과는 전부 의도적으로 뺐어요. 저희 입장은 간단합니다. 사진은 알약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려줄 수 없습니다. 먹을 생각이라면 바로 그 알약을 믿을 만한 현지 검사 서비스에 맡겨야 합니다.

알약을 이렇게 아름답게 찍으면서도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말하지 않으시잖아요. 그 둘이 모순되지는 않나요?

부딪히지 않습니다. 알약의 디자인과 성분은 사실 별개의 이야기거든요. 그 알약이 강하든 약하든, 아무것도 안 들었든 불순물이 섞였든, 아니면 그냥 알려진 것과 다른 물건이든 간에, 알약 생김새를 보면 예술과 마케팅, 문화에 대해 아주 많은 걸 알 수 있어요.

저희는 NGO와 Harm Reduction 단체, 검사 서비스와 긴밀히 협력합니다. 그렇지만 화학 정보를 공개하는 건 저희 역할이 아니에요. 그건 자격 있는 검사 기관이 할 일이에요. 정보를 최대한 정확하고 안전하게 전할 전문성과 공적 권한, 믿을 만한 체계가 있는 곳들이죠. 저희 일은 이 물건들을 보고 그걸 만든 문화가 어떤지 살피는 거예요.

연기가 깔린 어두운 전시장 천장의 알약 사진 조명판
Shelter 전시장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알약 하나가 봉지에서 나와 테이블 위에 올려지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가까이서 보면, 멀리서는 안 보이던 게 어떤 게 있나요?

저희 첫 번째 규칙은 절대 법을 어기지 않는 거예요. 저희는 저널리스트이자 아키비스트(Archivist)로 일하기 때문에 알약을 직접 소지하는 일이 없어요. 대신 자기 컬렉션을 집이나 작업실에서 촬영하도록 허락해주는 수집가들과 함께 작업합니다.

촬영 전에는 보통 수집가와 통화나 영상통화를 합니다. 그쪽에서 컬렉션을 대충 찍은 사진을 보내주면 저는 기록하고 싶은 알약을 골라내요. 특히 아직 저희 아카이브에 없는 디자인을요. 이 통화는 일종의 합 맞추기이기도 합니다. 저도 수집가가 편해야 하고 그쪽도 제가 편해야 하니까요.

촬영 당일에는 카메라와 조명을 세팅하는 데 15분쯤 걸립니다. 알약의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해서 렌즈와 완벽하게 평행이 되도록 맞출 수 있는 매크로 리그(접사 촬영 장치)를 직접 만들었어요. 시중에 쓸 만한 제품이 없었거든요. 뉴욕과 네덜란드의 대형 카메라 매장에 다 확인해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계하고 만들었어요.

우유 상자 위에 세운 매크로 리그. 수직 레일에 매단 카메라와 렌즈, 옆에 단 조명, 뒤 벽에 걸린 알약 사진 액자들
뉴욕 전시장에 놓인 매크로 리그

캘리퍼스로 알약 하나하나의 너비와 높이, 두께를 재서 기록합니다. 한 번에 하나씩 매크로 리그에 올려요. 포커스 브래킷팅이라는 기법을 씁니다. 초점 거리를 달리해 일곱 장에서 열두 장을 찍고 그걸 합쳐 알약의 모든 부분이 선명한 한 장을 만드는 방식이에요. 그다음 알약을 뒤집어 다시 정렬하고 뒷면을 찍은 뒤 같은 과정을 반복합니다. 한 번 촬영에 다섯 정이 될 수도, 200정이 될 수도 있어요. 컬렉션에 따라 다릅니다. 작업하는 동안 수집가를 인터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정 디자인에 얽힌 이야기, 그게 어떻게 홍보됐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겪었는지를 모으는 거죠. 수집가들은 정말 제각각입니다. 배경도 다 다르고 모으는 이유도 다 달라요.

이 배율에서는 맨눈으로는, 심지어 보통 휴대폰 사진으로도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이 정말 많이 보입니다. 제조 품질을 살펴볼 수 있고 첨가물과 장비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고 처음 봤을 때는 똑같아 보이는 스탬프들을 구별할 수 있어요. 원료를 얼마나 곱게 갈았는지, 색을 바꿀 때 기계를 제대로 청소했는지도 보입니다. 심지어 서로 다른 알약이 한 봉지에 담겨 다녔는지까지 알 수 있어요. 한쪽 색이 다른 쪽에 묻어 있으니까요.

흰 알갱이가 섞인, 퍼니셔 해골을 새긴 파란 방패 모양 알약
해골 생김새가 조금 다른 연파랑 퍼니셔 알약

퍼니셔, 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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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알약 검사를 맡은 정부 기관에서 이 작업을 발표했어요. 고해상도 사진이 그쪽 연구에 얼마나 쓸모 있는지 보여 주려고요. 이 사진들은 그냥 작은 물건을 찍은 사진이 아니에요. 알약이 어떻게 설계되고 만들어지고 돌았는지, 그 증거가 담겨 있죠. 접사로 찍으면 이만한 수준과 규모로는 한 번도 기록된 적 없는 숨겨진 세계에 들어갈 수 있어요.

화면에 띄운 알약 사진을 가리키며 발표하는 사람과 앉아서 듣는 사람들
네덜란드 트림보스 연구소에서 한 발표

90년대, 2000년대에 놀았던 사람들은 자기가 먹었던 약을 찾아보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 약을 찾아낸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알약을 알아보는 순간을 지켜보는 게 이 프로젝트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가 됐습니다. 저희 전시에는 이미지가 수백 점씩 걸리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 암스테르담 전시에는 350점이 걸렸고, 곧 열릴 뉴욕 전시에는 120점이 걸립니다.[이 답은 9월 초에 받았다. 뉴욕 전시는 9월 23~28일 SPRING/BREAK 아트쇼에서 열렸다.] 사람들이 전시장에 들어서면 눈이 곧바로 이 이미지에서 저 이미지로 바쁘게 옮겨다녀요. 익숙한 무언가를 찾는 겁니다.

초록 알약 사진 액자 앞에 선 관람객 두 사람
2025년 ADE 기간에 연 개인전 〈The Art of XTC〉

그리고 찾아내면 그 알약 하나로 놀랄 만큼 구체적인 기억이 되살아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먹었던 페스티벌, 그때 흐르던 음악, 그리고 아마 무엇보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요. 엑스터시는 여럿이 함께하는 약이라 친구들끼리 같은 알약을 나눠 먹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알약 디자인이 같이 겪은 일에 꽂아 둔 책갈피 같은 게 돼요. 사람들은 자기가 기억하는 알약의 작은 프린트를 사가거나 더 큰 맞춤 버전을 주문하곤 해요. 그날 밤 함께 있던 사람 수만큼 사가기도 하고요. 함께한 경험의 기념품인 셈이죠.

물론 기억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알약은 기쁨이나 들뜬 기분, 페스티벌의 멋진 밤을 떠올리게 하죠. 그런데 이제 곁에 없는 사람을 불러오기도 하고 힘들거나 무서웠던 경험을 되살리기도 합니다. 다만 거의 예외 없이, 알아보는 순간 다들 바로 이야기를 꺼내요. 사람들은 자기가 어디에 있었고 누구와 있었고 그 순간이 자기에게 무슨 의미였는지 저에게 말하고 싶어 해요. 누가 기꺼이 마음을 열고 그 얘기를 나눠 줄 때, 그건 정말 선물이에요.

초록 알약 사진 액자를 휴대폰으로 찍는 관람객
Design Museum Den Bosch 전시 〈DANCE – Design van een Cultuur〉

이 사진들을 보고 좋은 약과 나쁜 약을 가려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뭐라고 하시겠어요?

그 사람은 틀렸습니다. 더 심각한 건, 그 확신이 본인에게도 위험하고 그 사람 판단에 기댈지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도 위험하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1만 정이 넘는 알약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저는 보는 것만으로 어떤 게 안전하고 어떤 게 위험한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PMMA가 최근 검출된 알약들은 많은 사람의 예상보다 훨씬 잘 만들어져 있었어요. 두 가지 색에 깔끔하게 찍힌 스탬프였고, 위험하다는 걸 알려 줄 만한 표시는 겉으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수십만 정을 살펴본 검사 전문가들과도 함께 일하는데, 그분들도 똑같이 말합니다. 겉모습으로는 안에 뭐가 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요. 전혀요. 5년 동안 이 물건들을 아주 세세하게 들여다본 저한테도 그런 능력이 안 생겼는데, 대충 눈에 익은 정도로 다른 사람한테 생길 리는 없죠.

그래서 그런 확신이 드는 분이 있다면 겸손해지시길 부탁드립니다. 자기 안전을 걸고 도박하지 마시고 그 판단을 믿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헛된 확신을 주지 마세요. 사진은 디자인과 문화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약이 안전한지는 알려주지 못합니다.

원래는 먹고 잊어버리라고 만든 것들인데, 이제 한 권의 책이 됐습니다. 이렇게 공들여 남기면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생기나요?

책은 지금 인쇄소에 넘어가 있습니다. 616쪽에 무게는 2.4킬로그램, 판형은 24×30센티미터고, 654종의 알약을 찍은 사진 1,200장 이상이 실립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내 무엇을 보존하게 될지는 전적으로 제 손에 달린 일이 아닙니다. 제 바람은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면서 이 사진들을 보다가 기억이 되살아나는 거예요. 마주쳤던 알약, 겪었던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함께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요.

저희는 금방 사라지게 만든 걸 오래 남기고 있어요. 책에 실린 알약 중 어떤 것은 몇 주나 몇 달만 생산됐고 어떤 것은 형태를 바꿔가며 수십 년간 유통됐어요. 나란히 놓으면 오래 남는 아카이브가 돼요. 디자인과 제조와 마케팅의 변화, 그리고 제조자들이 골라 가져다 쓴 대중문화 조각들을 보여 주는 아카이브요.

그리고 사라지는 건 아마 전설의 일부일 겁니다. 알약은 더 이상 흐릿한 기억이나 친구들 사이를 오가는 이야기이기만 하지 않게 되니까요. 놀라운 해상도로 찍혀 지면에 목록으로 오르는 순간, 알약은 증거가 됩니다. 어느 지하 세계를 기록한 시각 아카이브의 한 항목이 되는 거죠.

존재했다는 건 아는데 아직 못 찍은 알약이 있나요? 지금도 찾고 있는 알약은 뭔가요?

너무 많죠! 알약 스탬프와 온라인에서 모은 사진으로 꾸린 저희 데이터베이스에는 디자인이 수천 종 있는데, 지금까지 찍은 건 654종뿐입니다. 그러니 할 일이 아직 한참 남았어요. 특히 유럽연합에는 나오지 않는 알약을 찍어 보고 싶어요. 미국에서만 도는 디자인 상당수가 그렇습니다.

한국에는 이 주제를 다룬 글이 거의 없고, 찍어 만든 알약 자체도 유럽보다 훨씬 드뭅니다. 한국 독자가 이 작업에서 하나를 가져간다면 무엇이었으면 하시나요?

사람들이 이 작업에서 무엇을 가져갈지 제가 정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떤 관람객들은 이 프로젝트가 미화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어요. 제 의도는 아니지만 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는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비판을 환영합니다. 이 알약들은 우리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든 소곤거리기만 하든 상관없이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있습니다. 더 깊이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에서 사람들이 이 약들을 먹고 있습니다. 어쩌면 책에 실린 것과 닮은 알약을요. 누군가에게는 충격적일 수 있겠지만, 그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국 독자들께도, 여기 네덜란드에서 그러듯이 호기심을 품고 이 프로젝트를 봐 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가까이 들여다보고 마음을 열어두고 이 디자인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물어보세요. 이걸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지, 어떤 문화를 빌려 왔는지, 이게 도는 사회는 어떤지를요.

저희 전시에는 정말 온갖 사람들이 찾아와요. 약을 먹어본 사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 아이를 데려온 가족, 친구들 무리까지요. 저마다 이 작업에서 다른 것을 찾아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에요. 예술이 하는 일이 그거니까요. 의미는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국 독자들이 이 프로젝트를 만나고 자기 생각을 이 이야기에 보태 주면 좋겠어요. 딱 한마디만 전할 수 있다면 “gamsahamnida”라고 하겠어요. 제가 아는 한국어 중에 메뉴판에서 시킬 맛있는 것의 이름이 아닌 건 그것뿐이거든요. 사람들이 연락을 주고 이야기를 이어가고, 언젠가 전시를 한국에 가져오는 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디자인들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함께 살펴볼 수 있게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것까지요.

사진 Dutch Can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