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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을 타지 않는 음악에 대하여 — 허밍어반스테레오 인터뷰

모자와 재킷을 입은 인물을 연필로 그린 표지 삽화

어떤 음악은, 듣는 순간 그 음악을 듣던 시절의 모습까지 함께 불러온다. 나에게는 허밍어반스테레오의 음악이 그런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하던 우리 엄마는 집에서 CD로 허밍어반스테레오의 곡을 자주 틀어놓곤 했고, 나는 거실에 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빈둥거리곤 했던, 그런 모습이 떠오른다. 아, 어딘가 자유롭고 느슨했던 시절의 홍대와 싸이월드도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허밍어반스테레오의 음악에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낡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아마도 유행을 좇기보다는 자신만의 결을 꾸준히 밀어온 힘 때문일 것이다. ‘하와이안 커플’과 ‘바나나 쉐이크’ 같은 대표곡들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것 외에도 지난 20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그만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서울하우스뮤직은 허밍어반스테레오(@hummingurbanstereo)와 함께, 유행을 타지 않는 음악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오래 남는 취향,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그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검은 재킷 차림으로 일렉트릭 기타를 든 허밍어반스테레오

몇 년 전, ‘바나나 쉐이크’가 숏폼에서 sped up 버전으로 다시 퍼지고, 밈까지 붙으면서 젊은 세대에게 다시 발견되었어요. 당시 어떤 기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 유행한 게 다시 돌아오면 늙은 거라고 하던데, “아, 내가 나이 들었구나” 싶었습니다. (웃음) Sped up 버전이 ‘나문희의 첫사랑’이라는 밈으로 바이럴 되면서 워너 본사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좀 더 짧게 재발매했는데, 카일리 제너가 그 음악을 쓴 거예요. 미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냐, 마케팅비를 썼냐”고 연락이 올 정도였죠.

‘하와이안 커플’이 영화 음악이나 행사로 알려진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제가 좋아서 만든 음악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받는 기분이라 정말 좋았어요. 국내 유행은 짧지만, 해외에서는 아직도 많이 들어주고 계셔서 지금 시대에 이런 바이럴이 터지는 게 참 좋구나 싶었습니다.

붉은 카디건을 입은 남성이 손짓하는 하와이안 커플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하와이안 커플'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2008년에 업로드된 이 뮤직비디오에는 패션과 연출, 그리고 2000년대 중후반 특유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류승룡, 정일우, 최강희, 감우성, 이연희 등 지금은 스타가 된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분홍빛 무대에서 교복 차림으로 춤추는 뉴진스의 텔미 무대
'바나나 쉐이크' 바이럴 영상의 한 장면. 허밍어반스테레오의 '바나나 쉐이크'는 "너무 휘어졌어"라는 가사가 배속되며 "나문희의 첫사랑"처럼 들린다는 밈으로 다시 확산됐다. 틱톡과 릴스를 중심으로 퍼졌고, 특히 뉴진스 해린의 '텔미' 영상에 이 음원을 붙인 2차 창작이 폭발적으로 퍼지며 국내에서도 세대를 넘어 다시 소비됐다.

허밍어반스테레오의 곡 제목을 보면 유독 음식이나 먹을 것에 대한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그런 소재를 반복해서 쓰게 된 개인적인 이유나 의도가 무엇일까요?

음식은 삶과 가장 밀접하니까요. 우리는 매일 밥을 먹잖아요.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음식, 자주 가던 식당은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돈가스를 싫어하고 생선가스만 먹던 사람처럼 사소한 취향이 기억에 남기도 하고요. 그런 일상적인 소재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습니다. 예전 한국 가요에서는 잘 안 쓰던 표현들이라 제가 그쪽으로 방향을 잡기도 했고요.

초기 곡들은 확실히 더 말랑말랑한 느낌이 강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하고 성숙한 분위기로 이동한 느낌이 있어요. 이러한 변화는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건지, 아니면 스스로 방향을 잡아가며 의도적으로 구축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하와이안 커플’ 히트 이후 아류작들을 너무 많이 만들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진짜 만들고 싶은 음악을 해보자고 해서 나온 게 ‘봄날의 사케’였고, 그때부터 방향을 잡았죠. 나이 들면서 취향도 변하고 더 단단해지잖아요. 이미 보컬이나 가사 고민 없이 음악 그 자체를 즐기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고요.

한번은 공연에서 “듣고 싶은 노래 있나요?” 물었더니 팬들이 당연히 ‘하와이안 커플’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SUGAR DADDY’ 같은 곡을 외치시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무대에서 울컥했습니다. 내가 좋아서 만든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팬들도 세대교체가 되었구나 싶어서요. 그 뒤로는 공연도 더 열심히 하고, 제가 가고 싶은 길을 뚝심 있게 가게 된 것 같습니다.

‘Scully Doesn’t Know’ 음악방송 무대. 허밍어반스테레오가 2005년 MBC 「쇼! 음악중심」에서 선보인 무대로, 지금 다시 봐도 곡의 세련됨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허밍어반스테레오 음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고정 보컬이 아니라 다양한 객원 보컬을 기용한다는 점인데요. 객원 보컬을 선택할 때의 기준, 그리고 디렉팅할 때 원칙이 있다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첫째는 제가 노래를 못해서, 둘째는 객원 보컬이 부르면 곡이 더 좋아지니까요. 저는 제가 원석을 가져오면 보컬이 세공해서 보석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제 목소리로 다 채우면 곡이 좀 칙칙해지더라고요. (웃음) 제가 부를 때는 좀 찌질한 감성을 표현해야 할 때나 가이드 느낌이 좋을 때 정도입니다. 휘성 씨 같은 분이 부르면 너무 노래를 잘하시는데, 제 의도인 가창의 멋보단 가창의 맛을 선호할 때가 있어서, 때로는 다운그레이드(?) 같은 디렉팅을 하기도 합니다.

긴 머리에 남색 멜빵 원피스를 입은 허밍걸 이진화비니와 카디건을 입고 웃는 요조

왼쪽 허밍걸(이진화). 허밍어반스테레오의 대표곡 '하와이안 커플'에서 특유의 사랑스럽고 맑은 보컬을 들려준 객원 보컬이다.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더욱 안타깝게 기억되며, 지금까지도 많은 리스너들에게 허밍어반스테레오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오른쪽 요조. 허밍어반스테레오에서 객원 보컬로 참여하면서 '바나나 쉐이크', '샐러드 기념일' 같은 곡들로 애교 있고 속삭이는 느낌의 보컬을 들려줬던 요조는 당시 홍대 인디 씬의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이다. 허밍어반스테레오 20주년을 기념해 발표된 곡 '20'에서는 과거 객원 보컬 뮤즈들을 다시 모은 콜라보에도 참여했다.

제가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싶은 건 허밍님이 요즘 작업할 때 특히 꽂혀 있는 악기나 디깅하는 아티스트입니다.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남들보다 최신 음악을 더 모릅니다. 작업할 때 방해받기 싫어서 다른 음악을 잘 안 듣거든요. 작업실 컴퓨터는 인터넷도 끊어놨어요. 차에서는 10년째 빌 에반스 CD만 듣고, 집에서도 재즈만 듣습니다. 그래도 앨범 나오면 챙겨 듣는 뮤지션은 토와 테이, 저스티스, 디스클로저 정도입니다. 사운드 메이킹을 참고하려고 듣죠. 프로는 영감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그냥 의자에 앉는 거라고 하잖아요. 저도 휘둘리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렇다면 최근 AI 음악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데 허밍어반스테레오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피할 수 없는 흐름이고 대중화될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는 ‘Human Made’, ‘AI Made’, 혹은 ‘Hybrid’ 같은 인증 마크가 생기지 않을까요? 저도 우연히 들은 시티팝이 너무 좋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AI가 만든 거라고 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웃음) 그 이후 이제 검색할 때 ‘No AI’를 붙이게 되더라고요. 저는 아직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나중에는 도구로서 활용할 시점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받아들여야 하는 변화인 것 같아요.

예전에 ‘인스턴트 로맨틱 플로어’라는 좀 더 거칠고 낭만적인 결의 음악으로 활동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다시 보여주실 계획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마침 ‘인스턴트 로맨틱 플로어’ 새 앨범이 나옵니다. 12월 31일에 선공개 곡이 나오고 내년 초에 정규 앨범이 나와요. 멤버들이랑 10여 년 만에 뭉쳐서 작업했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원래 두 곡만 하려다가 다섯 곡, 여덟 곡이 되어서 정규를 내기로 했습니다. 예전처럼 낭만 있고 거친 느낌을 살려서 작업했습니다.

인스턴트 로맨틱 플로어 ‘냐옹’ 비주얼라이저. 이지린, YeSLow, Sugar Flow가 함께한 프로젝트로,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 명일이를 떠올리며 만든 곡이다

작사, 작곡, 편곡뿐 아니라 커버·디자인·비주얼 디렉팅까지 거의 1인 기획사처럼 하고 계세요. 이 방식이 창작자로서 자유롭겠지만, 동시에 외롭거나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는 어떤 지점이 가장 힘들고, 반대로 어떤 지점이 가장 재미있는지 궁금합니다.

외롭기보다는 오히려 남 탓을 안 하게 돼서 좋습니다. 결과물이 안 좋아도 다 제 책임이니까요. 영상은 제가 직접 수정하기 어려워서 좀 힘들지만, 앨범 커버나 디자인 디렉팅은 재밌습니다. 대부분 제가 믹싱을 하지만 간혹 프로 엔지니어분과도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도 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느낄 때 엔지니어분들과 하면 예상하지 못했던 반짝임과 과감함을 느껴서 좋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가 많은 부분을 합니다. 제 의도를 최대한 반영하고 표현하는 것이 때론 고통스럽지만 너무 재밌거든요.

노란 배경의 세트에서 연기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바나나 쉐이크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바나나 쉐이크'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2000년대 초중반 허밍어반스테레오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뮤비. 바나나와 우유, 쉐이크 같은 반복적인 이미지와 과장된 제스처, 그리고 가사만큼이나 엉뚱한 유머가 겹쳐지며, 사랑스럽고 발랄하면서도 동시에 키치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시대를 앞서간 뮤비이다.

아주 긴 세월 동안 허밍어반스테레오라는 브랜드를 끌고 오셨습니다. 오랫동안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님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루틴이 있어야 합니다. 작업이 안 돼도 일단 컴퓨터를 켜고 앉아 있습니다. 안 되면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전날 미리 적어놓습니다. 그 루틴을 지키다 보니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아티스트는 인기도 면에서 하향 곡선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20년, 30년 계속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중요한 것은 여기에 대처하는 자세인 것 같아요. 저는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려고 매번 노력해요. 앨범이 나왔는데 아무도 안 듣는 경우가 왜 없겠어요. 하지만 저는 이 노래를 모르는 게 아쉬운 것이지, 한 번 들으면 한 번만 듣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또한, 저는 불편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믿습니다. 컴퓨터 하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일부러 아날로그 장비들을 사용하고 만지면서 나만의 컬러를 잃지 않으려고 해요. 하기 싫은 일을 해야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너무 쉬운 곡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만약 마지막 앨범을 낸다면 어떤 장르, 어떤 분위기일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마지막 앨범이라면 둘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모든 악기를 진짜 악기로만 채우는 언플러그드 방식이거나, 아니면 컴퓨터 하나로만 극한으로 몰아세우는 방식일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컴퓨터 한 대로 만드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겠지만, 마지막 앨범이라면 웬만하면 모든 악기를 다 리얼로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프트 펑크가 마지막 앨범을 리얼 악기로 채웠던 것처럼요.

허밍어반스테레오의 팬들은 오랜 시간 함께해 왔습니다. 약 20년 동안 함께 나이 들어온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정말 고맙죠. 제 사명감은 누군가 “너 무슨 음악 좋아해?”라고 물었을 때 “나 허밍어반스테레오 좋아해”라고 대답하면, 그 취향이 촌스럽지 않고 근사해 보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의 안목이 멋지다는 걸 증명해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매년 앨범을 냅니다. 제가 꾸준히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팬분들은 자부심을 느끼시더라고요.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인터뷰 편집은 늘 오래 걸리지만, 이번 건 유독 더 오래 붙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느낀 허밍어반스테레오, 그리고 이지린 님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지 않게, 가능한 한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이 계정을 운영하며 느끼는 가장 큰 수혜라고 느끼는 점은, 만나보고 싶지만 쉽게 만날 수 없는 아티스트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인터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인터뷰 현장에서는 너무 긴장해서 덜덜 떨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편집이 끝나갈 즈음에는 묘하게 슬픈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 허밍어반스테레오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유튜브에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다 담지 못한 질문들은 영상으로 이어진다. 활동 당시 시부야케이 장르가 국내 음악 씬에서 어떤 위치였는지, 초기 객원 보컬들의 섭외 방식은 무엇이었는지, 허밍어반스테레오가 좋아하는 서울의 장소는 어디인지, 덜 알려졌지만 꼭 들어봤으면 하는 추천곡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사람들이 당신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