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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DJ, 씬을 지탱하는 자들

헤드폰을 쓴 사람이 고개를 숙인 채 턴테이블 두 대 사이의 믹서 쪽으로 한 손을 내리고, 다른 손은 오른쪽 데크 쪽으로 뻗고 있다. 어깨에 닿는 길이의 머리에 수염을 길렀고, 검은 티셔츠 앞면에는 두 발로 선 흰 짐승 두 마리가 크게 프린트돼 있으며 그 위로 헤드폰 선이 늘어져 있다. 명암이 강한 흑백으로, 뒤쪽 벽은 환한 삼각뿔 흡음재로 덮여 있고 왼편 콘솔 위에는 레코드 상자로 보이는 궤짝이 놓여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라인업부터 본다. 물론 라인업을 안 보고 가는 곳도 있지만, 이름 보고 티켓 사고 그런다. 근데 이 클럽을 매주 지키는 사람이 있다. 헤드라이너가 오기 전에 틀고, 다 끝난 뒤에도 트는 사람. 우리가 이름을 기억 안 해주는 사람들이 사실 씬을 지탱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당신이 이름을 아는 레지던트는 몇 명인가?

포스터에 대문짝만하게 박히는 이름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름들이 있다. 레지던트는 대개 후자다.

매주, 매달, 같은 베뉴에서 트는 사람. 헤드라이너가 오기 전 플로어를 달구고, 다 끝난 뒤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 그리고 이들이 하는 일이 사실 디제잉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아무것도 안 터뜨리는 것. 레지던트는 참는 자리다.

워밍업은 참는 기술이다. 좋은 트랙이 있어도 일부러 터뜨리지 않는다. 지금 터지면 플로어도 그만큼 일찍 식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플로어를 천천히 달군다. 터뜨리는 건 자기 몫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원래 클럽은 이런 사람들로 만들어졌다.

70~80년대엔 DJ가 거의 다 레지던트였고, 한 곳에서 오래 트는 게 기본이었으니까. 하우스라는 장르도 그렇게 태어났고. 십 대 시절부터 친구였던 프랭키 너클스와 함께 하우스/개러지의 뿌리로 불리는 래리 레반은 뉴욕 파라다이스 개러지에서 10년을 틀었고, 사람들은 매주 거기 가는 걸 ‘토요 미사’라고 불렀다. 그가 유명해진 건 여러 클럽들을 돌며 틀어서가 아니라, 10년을 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디제이 부스에서 웃으며 고개를 돌린 사람. 흰 티셔츠 차림으로 한 손을 들어 머리 위에 매달린 장비를 만지고 있고, 앞쪽 콘솔에 턴테이블과 믹서가 놓여 있다. 흑백 사진
래리 레반 Larry Levan

베억하인도 마찬가지다. 벤 클락과 마르셀 데트만은 이젠 포스터 맨 위에 오르는 이름이지만, 그 이름은 한 클럽에서 몇 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이비자의 레지던트랑 베를린의 레지던트는 아예 다른 음악이 떠오르지 않나. 클럽의 정체성은 로고가 아니라 레지던트가 만들고, 레지던트의 이름도 그 클럽이 만든다. 그러니까 원래 레지던트는, 이름이 만들어지는 자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순서가 거꾸로다.

예전엔 오래 틀어서 이름을 얻었다면, 지금은 이름이 있어야 틀 수 있다. 팔로워 수가 부킹의 이유가 되고, 이벤트는 헤드라이너 중심으로 짜인다. 이름을 만드는 자리였던 레지던트가, 이름이 없는 자리가 된다. 이름이 만들어지던 생산 구조가 멈춘 거다.

누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니다. 사람이 아니라 구조가 바뀐 거다. 임대료는 오르고, 티켓은 이름값으로 팔린다. 클럽 입장에선 부르고 싶어서가 아니라, 안 부르면 못 버티니까 부르는 쪽에 가깝다.

헤드라이너를 부를 이유도 물론 있다. 티켓이 팔려야 다음 달에도 문을 연다. 레지던트만으로 굴러가던 시절은 클럽이 적고 갈 데가 그것뿐이던 시절이기도 했고, 헤드라이너보다 클럽의 색깔이 더 강했던 때이기도 하고. 그리고 레지던시도 오래되면 고인다.

애초에 헤드라이너도 어딘가에선 레지던트였고, 지금도 레지던트인 사람이 많다. 그러니 문제는 헤드라이너가 있다는 게 아니다. 그 클럽에 갈 이유가, 오늘 오는 헤드라이너 하나뿐이 됐다는 거다.

서울은 좀 다르다.

베를린이 고일까 봐 걱정한다면, 서울은 애초에 쌓일 시간이 부족했다고 본다. 레지던트가 밀려난 게 아니라, 클럽이 몇 년을 못 가고 문을 닫는다. 그러니 씬이 클럽 단위가 아니라 크루와 파티 단위로 굴러간다.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클럽의 색이라는 게 잡히려면 같은 클럽에서 같은 사람이 몇 년을 틀어야 하는데, 그 몇 년을 버틴 베뉴가 그리 많지 않다. 이름이 만들어질 자리가, 자리 잡을 시간이 없었던 거다.

그럼 씬은 어떻게 도는가?

로컬 레지던트가 있어야 돈다. 안에서 사람이 자라고, 자란 사람이 다시 안을 먹여 살린다. 레반도, 클락도 그렇게 지금의 이름이 됐고, 그 이름이 다시 그 클럽을 먹여 살렸다. 물론 지금은 클럽 말고도 이름이 만들어지는 길이 있다. 릴스나 쇼츠 같은.. 음..

아무튼, 지금 서울은 이 루프가 잘 돌지 않는다. 우리는 남의 씬이 키운 사람을 초대하는 쪽이지, 우리가 키운 사람을 보내는 쪽은 아직 아니다. 한국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디제이가 손에 꼽는 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름이 만들어질 곳이 없었고 그 이름을 소비할 시장도 작았던 탓이 클 거다. 몇 년 동안 자리를 지키는 클럽이 있어야 이름이 생기는데, 그 클럽이 자꾸 없어진다.

십 년 뒤 서울 어느 포스터의 맨 윗줄에, 서울이 키운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옆에 어느 클럽의 레지던트였는지도 같이 적혀 있고. 그러려면 누군가는 몇 년을 같은 자리에 서 있어야 하고, 클럽은 그 몇 년을 버텨야 한다. 서울에서는 아직 둘 다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