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전자음악, 한국 클럽 씬, 밈 계정 — 판베씨 aka 김판베 인터뷰
서울의 클럽 씬은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이곳에서 파티는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다시 반복되지만, 이를 구조화해 바라보는 시선은 드물다. DJ이자 연구원이자 건축 밈 계정 김판베(@kim_panve)의 운영자인 김명준은 전자음악과 언더그라운드 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 인물로, 현재 클럽 문화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는 연구원이기도 하다. 그는 쉽게 흩어지고 있는 이 씬의 파편들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있다. 우리는 그를 만나 전자음악과 건축, 한국 클럽 씬, 그리고 밈 계정 운영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본명은 김명준, 1999년생으로 현재 27세이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건축문화 연구실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해 현재는 논문을 준비하는 연구원이다. 건축 밈 계정 ‘김판베’를 운영하고 있고, 전자음악에 관심이 많아 현재는 대학원에서 클럽 공간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이태원 언더그라운드 클럽들의 건축적 요소를 분석하며, 건축과 전자음악의 접점을 탐구하고 있다.
전자음악은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나?
음악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는데, 4~5살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바이올린을 취미로 배웠고, 클래식 공연을 즐기며 자랐다. 누나의 영향으로 팝 음악도 접하게 되었는데, 누나가 들려준 블랙 아이드 피스의 음악, 특히 ‘I Gotta Feeling’ 같은 곡을 통해 전자음악에 매력을 느꼈다. 이후 아비치, 데이비드 게타, LMFAO 같은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전자음악을 점점 좋아하게 됐다.
테크노 DJ로 활동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테크노에 빠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고등학생 시절 때부터 한창 빅 룸 하우스나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를 들었는데 그 음악들이 점점 질리더라. 그러다 새내기 시절 이태원 문화를 잘 아는 친구 덕분에 처음 이태원 Soap를 가게 되었다. 마침 그날은 PEACH EVERYWHERE 파티 날이었는데 거기서 키노키노(지금은 안나킴(Ana Kim)으로 활동)가 테크노 음악을 몇 곡 틀었다. 그때 처음으로 테크노를 큰 소리로 제대로 들어본 거다. 그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테크노에 관심을 갖게 됐다.

테크노에 더 깊이 빠진 결정적인 계기는 유럽 여행이었다. 베를린의 Tresor 클럽에 가서 앰비언트랑 딥 테크노, 덥 테크노 같은 음악을 들었는데, 공간 자체가 너무 멋있고 날것의 느낌이 강렬해서 테크노의 매력에 완전히 빠졌다. Tresor를 가게 된 건 음악 때문에 간 게 아니라 “이 공간은 뭐지?” 하는 건축학도 마인드로 간 거였다. 그저 호기심에 갔는데 자연스럽게 음악에 더 깊이 파고들게 되었다. 낮에는 건축 전공자답게 유명 건물들을 보고, 밤에는 음악 들으러 다녔다.
클럽을 다니면서 구조적으로 잘 설계되어 있다고 느낀 곳이 있다면 어디인가?
내가 주로 다닌 이태원 클럽들로 한정해서 이야기하자면, FAUST가 음향적으로 제일 뛰어나다고 느꼈다. SX라는 클럽도 인상적인데, 긴 복도가 기억에 남는다. 처음 들어가면 프론트 룸, 그러니까 바 같은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잔잔한 음악이 들린다. 그런데 긴 복도를 지나면서 소리가 점점 페이드인 되듯 바뀌고, 클럽 룸의 소리가 서서히 들려오는 순간이 정말 좋았다. 일종의 장소 전환이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복도라는 물리적 구조만으로도 청각적 전환이 명확히 이루어지는 점이 좋았다.

또 RING은 언더그라운드한 분위기를 정말 잘 반영했다고 느끼는데 전체 구조가 ‘댄서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같은 음악을 공유하지만 위층에서는 소리가 상대적으로 덜 들려서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분돼 있다. 반면 아래층에서는 춤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 세 곳의 대표적인 특징은 ‘술 마시는 공간’과 ‘춤추는 공간’이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각각의 행위에 정확히 집중할 수 있게 설계한 거다. 이런 구분이 가능한 클럽들이 개인적으로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누가 클럽 어디가 좋냐고 물으면, 이런 이유로 이 세 곳이 좋다고 말하는 것 같다.

만약 본인이 베뉴를 설계한다면 어떻게 만들고 싶나?
(잠시 고민하며) 어떤 정해진 디자인을 따르기보다는, 공간이 분리돼 있으면 좋겠다. 앞서 말했듯,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은 확실히 열려 있고, 술을 마시거나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은 따로 나뉘어 있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역할에 따라 공간을 나누되, 전체적으로는 외부적인 시도와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구조였으면 한다.
우리나라에서 ‘클럽’이라는 단어는 너무 다양한 방식으로 쓰인다. 술을 마시는 방식도, 음악을 즐기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이러다 보니 ‘클럽’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결국 어느 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전체 이미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이 생긴다.
우리는 강남 클럽과 이태원 클럽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만의 감각일 뿐, 대중 모두가 그렇게 인식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클럽과 관련된 부정적인 이슈가 언론에 보도되면 구분 없이 모두가 피해를 입는 구조가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대중이 클럽 문화에 접근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클럽이라는 공간은 본질적으로 청년 문화와 하위 문화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의 유입이 끊기면 안 된다.
물론 유명 아티스트가 방문하는 걸로 주목을 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일회성에 그친다. 결국 중요한 건, 이 공간 자체가 멋있어 보이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베뉴를 만든다면 젊은 층을 끌어들이고 유입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 나아가 워크숍, 전시, 스튜디오 운영 같은 시도를 통해 클럽 문화를 더 넓게 풀고 싶다.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전자음악과 건축 관련 추천 자료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Temporary Pleasure’라는 팀이 낸 동명의 책이 있는데, 정말 멋진 책이다. 최근 Panopticon 시스템을 기반으로 파티를 열었다. Panopticon은 중앙에 있는 교도관이 모든 죄수의 시선을 감시하는 구조인데, 팔각형 무대를 짜고 가운데서 DJ가 음악을 틀었다. 감시당하는 느낌을 조명으로 표현한 거다. 이런 파티를 보면 정말 건축적이다. 이런 실험적인 파티를 보면서 클럽 구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내 연구에서 사운드와 건축을 연결하게 된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클럽이 단순히 “술 먹고 음악 틀고 노는 곳”으로 보인다. 그 이상의 의미를 주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건축과 소리가 만나는 지점을 찾았다. 사람들이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를 통해 소리 경험을 하고, 밤에는 클럽으로 변하는 공간을 구상했다. 한국에서는 청년 문화나 하위 문화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실질적인 시도가 많지 않다. 이런 고민을 논문으로 괴상하게 풀어보고 있다.
추천 논문으로는 「탈/식민성의 공간, 이태원과 한국의 대중음악: 이태원 ‘클럽’들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중심으로(1950-1991)」가 있고, 또 도움이 되었던 건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의 쾌락의 의미에 대한 문화연구적 해석」이 있다. 또 「댄스클럽의 기업화에 따른 클럽문화의 변화와 지역 차별성의 강화: 홍대, 이태원, 강남지역에 대한 취향문화적 접근」도 큰 도움이 되었다. 국내외로 클럽문화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로스트에어가 국립현대미술관과 현대자동차의 2022 해시태그 프로젝트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여기서 이태원, 홍대 같은 지역의 클럽과 파티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 클럽 씬의 주요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데이터 시각화, 그리고 레이브 파티까지 한 전시였다. 이 전시를 통해 전자음악과 파티가 가지는 현상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런 작업 덕분에 클럽과 파티가 열리는 플랫폼을 공간 지정학적 관점에서 볼 수 있었고, 내가 논문으로 이런 주제를 다뤄볼 용기를 얻었다.
또 Bolero, 힐즈앤유로파, Stoked & Stoned를 디자인한 레인지 박(Range Vak, 박영호)이라는 건축가가 있다. 바이닐로 멋지게 음악을 틀던 분이기도 한데 그분의 작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런 선배들의 시선을 보면서 내가 어떤 베뉴를 만들고 싶은지 고민하게 된다.

이런 논문을 참고하면서 지금은 클럽의 평면도를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베톤부르트, 쉘터, 케익샵, SX, 볼레로 등의 평면도를 얻어오고 RA에서 크롤링을 해서 클럽의 정보를 정리하고 디자이너는 누군지, 장르는 뭔지 하나씩 정리하고 있다. 자료가 없기 때문에 직접 만들고 있다. 그리고 연구하면서 이대화 선생님도 한번 직접 뵙기도 했다.
밈은 어떻게 제작하나?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 순간 바로 만든다. 올리는 데 5분도 안 걸린다. 미리 소스를 모아놨다가 상황이 딱 맞으면 뚝딱 만들어 올린다. 오히려 음악 고르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최근엔 Mount XLR 음악을 넣었는데, 그 다음 주에 한대음에서 상을 받아서 “역시 내 안목이 좋구나” 싶었다. (웃음)

밈은 애초에 만평 같은 개념이라 무겁지 않다. 깊이 고심해서 만든 게 아니라 순간의 감정이나 생각을 올리는 거라, 내가 “작가”라는 느낌은 크게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업이지만, 거기서 사회를 바라보고 “뭐가 잘못됐을까”를 고민하며 만드는 게 의미를 더한다. 그런 점이 인정받아서 전시를 열거나 건축 신문에 실릴 기회를 얻었다. 안 그랬다면 그냥 팔로워만 많고 “돈 많이 벌겠네”로 끝났을 거다.

김판베라는 계정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SNS를 수단으로 생각한다. 원대한 꿈을 이루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김명준이라는 사람이 도움을 주는 걸로 활동하고 싶다. 사람들이 더 알아봐 주고, 유명세도 얻으면 재밌지 않겠나. 그저 “잘 보고 있어요”라는 한마디가 좋았다. 내가 진심으로 하는 이 행위가 문화를 도와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서울하우스뮤직도 다양한 음악 소개를 하면서 편 가르기 없이 문화가 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활동하지 않나. 나도 똑같다. 사람들이 더 많이 봐주고, “이런 게 있구나” 하면서 수준이 올라가고, 더 단합되고, 마음이 모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지금의 클럽 씬이 다음 세대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문화는 이어지지 않으면 소멸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서로를 깎아내리기보다는 비판과 응원이 균형을 이루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렇게 존중이 깔려야 다른 자본이나 문화와도 잘 섞일 수 있다. 좁은 씬일수록 서로를 작게 보면 진짜 작아진다. 시야를 넓히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지금도 잘하는 아마추어나 프로들이 많고, 그들을 응원해주는 선배들의 시선이 더해지면 더 건강해질 수 있다.
사실 나도 한때는 디제잉으로 유명해지고 싶었다. 스펙트럼 뮤직 페스티벌 콘테스트에서 2등까지도 했고, 이틀간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태풍으로 무대가 통째로 취소됐다. 또 이외에 코로나까지 겹치며 상황이 엉켜 당황스러운 순간도 많았다.
만약 유명해지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쯤에서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마음을 바꿨다. 이 음악을 좋아하니까, 적당히 즐기자고. 그 순간부터 오히려 팀이 생기고, “같이 음악 틀자”는 제안도 받았다. 그런 경험 속에서 배운 게 있다. 혼자 잘 되는 것보다, 주변을 챙기고 샤라웃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밈 계정을 운영하고, 디제잉을 하고, 디자인을 하며 파티를 기획하는 이유는 단순히 일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문화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이 씬이 더 오래, 더 넓게 퍼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