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억하인 테크노를 정의한 남자, Ben Klock

이제는 아시아권에서도 테크노 스타들이 탄생하고 있는 것 같다. 유럽 밖에서도 테크노가 자리 잡은 건, 이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해 온 사람들이 있어서일 거다. Ben Klock은 그 흐름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Etapp Kyle과 DVS1 같은 거장을 일찍 알아봤고, 마르셀 데트만과 함께 베억하인 테크노의 틀을 다졌다.
“테크노에 관심 없던 누군가가 그날 밤 내 공연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해줄 때의 피드백을 사랑한다.”
“처음에는 그저 서 있던 사람들이 30분 뒤에 모두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그들의 얼굴에서 즐거움을 읽는 것은 정말 놀라운 기분이다. 누군가에게 이 음악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단계가 된다는 건 멋진 일이다.”

검은 티셔츠, 특유의 차가운 얼굴, 베억하인, 마르셀 데트만. 벤 클락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다.
벤 클락은 지금의 베를린 테크노가 어떤 소리인지를 정한 사람으로 꼽히지만, 젊은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던 것 같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는 스니커즈 초콜릿 홍보를 위해 산타 복장을 하고 전단지를 돌리기도 하며, 시장에서 올리브를 팔기도,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많이 방황했고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여러 세상을 경험했기에 지금의 위치를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여러 지점에서, 나는 그 어떤 성공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공은 내 것이 아니라고만 믿었다. 난 그런 생각들을 떨쳐내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그는 90년대 후반 쿠키스, 트레조어에서 레지던트를 하며 자리를 잡았으나, 이후 하우스 음악이 인기를 끌면서 테크노에 대한 열정을 잃고 음악을 그만두기 직전까지 갔다.
“디제잉이 정말 내가 가야 할 길인지 의심하던 시기가 있었다. 음악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졌고, 나를 DJ로 만들어주는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음악계에서 멀어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아직 나에게 맞는 환경이나 장소를 찾지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그리고 곧 그 장소(베억하인)가 나타났다.”

베억하인 레지던시를 시작하며 그는 자신감을 얻었고, 3년이 지나서야 마침내 그래픽 디자이너 일을 그만두고 음악에 매진할 수 있었다는 벤 클락. 독일 테크노 최고의 거장이라 불리는 그가 한때는 음악을 포기할 생각으로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본업에 매진했다는 사실은 꽤나 동질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벤 클락의 세트가 단순히 차가운 기계음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의 뿌리가 재즈에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대학에서 매일 8시간씩 피아노 스케일을 연습하던 재즈 지망생이었던 그는, 완벽한 연주 기술보다 하나하나의 소리를 이어 이야기처럼 만드는 데 더 매달렸다고 한다.
8시간에서 길게는 15시간까지 이어지는 그의 마라톤 셋에는 철저한 자기 관리가 있다. 투어 중에는 술 대신 직접 챙긴 생강차를 마시고, 비행기를 기다리면서도 노트북으로 루프를 시험해 본다. 스스로를 고독한 운동선수에 가깝다고 말할 정도다. 심지어 그는 공연 환경에도 예민해서, 호텔에서 챙겨온 흰 수건을 행운의 아이템처럼 덱 옆에 두는 소소한 징크스가 있기도 했다고.

20년 넘게 정상에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한 가지 틀에 갇히는 걸 싫어한다. ‘Layer One’ 프로젝트가 그렇다. 댄스플로어용 기능은 다 빼고, 인류가 사라진 뒤 AI와 디지털 잔해만 남은 세상을 앰비언트와 IDM으로 그린 앨범인데, 꼭 “나를 테크노라는 틀에 가두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나는 테크노 순혈주의자가 아니다(I am not a techno purist).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음악, 삶, 감정, 그리고 그 음악으로 무엇을 전달하느냐 하는 것이다.”

벤 클락은 Etapp Kyle이나 DVS1처럼 지금은 거장이 된 이들을 일찍 알아본 사람이기도 하다. 완성된 것보다 가능성을 먼저 보는 사람이었다.1

그가 20년 넘게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힘은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그는 여전히 디제잉을 ‘20%의 직업’과 ‘80%의 자아실현’으로 정의한다.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으면 바로 멈춰야 한다는 그의 원칙은 단호하다.
“나는 여전히 디제잉을 20%의 직업과 80%의 ‘내가 사랑하는 일’ 혹은 ‘내 자아를 실현을 위한 노력’으로 본다. 물론 비즈니스적인 측면도 있지만, 여전히 그 핵심을 느껴야 하고, 열정을 느껴야만 한다.”
“만약 이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 때가 오면 바로 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DJ로서의 역할이 작동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열정이 없으면 결코 잘할 수 없다.”

결국 벤 클락이 차가운 무표정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단순한 비트의 반복이 아니라,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이다. 그는 가장 차가운 얼굴로 가장 뜨거운 시간을 만든다. 이것이 우리가 그의 셋을 사랑하는 이유다.
Notes
-
물론, DVS1은 미국에서 오래 활동한 로컬 거장이긴 했으나, 글로벌 씬에 이름을 알리게 했다는 관점에서 ‘발굴한다’는 표현을 빌린다. ↩


